아직 날씨가 쌀쌀하던 2월의 어느 하루. 뉴저지 에지워터에 있는 마리나 (Marina) 항구를 멀찍이서 파노라마로 찍어보았다.
하얀 캐노피가 있는 저 길고 좁은 길 끝이 배(ferry)를 타는 곳이다. 출퇴근 시간 때 교통체증을 피해서 뉴욕 맨해튼까지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 당시엔 편도 10불 정도였는데 지금은 얼마려나...
버스든 배든 웬만해선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가 있어야 했다. 가끔 이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배가 오는 게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죽어라 뛰어야 했다. 저 길이 사진 상으로는 짧아 보여도 뛰어보면 한도 끝도 없이 긴 길이다. 배를 놓치면 45분 또는 그 이상을 기다려야 다음 배가 오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인종 관계없이 목숨 걸고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 선장이 기다려주기도 하는데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럴 때면 배와의 거리가 두세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한번 겪어본 뒤부터는 아예 15분 정도 일찍 가 있게 되었다. 뛰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끔찍해서 어떻게든 피하려 애쓰게 되었다.
하루는 외투를 껴 입고 랩탑을 가지고 나와서 야외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 동네가 강변이어서인지 바람이 더 세거나 더 찰 때가 많은데 이날은 둘 다였다.
나름대로 낭만을 즐겨보려고 나온 것이었으나 결국 추워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리나 주위는 산책하기 좋지만 가끔 너무 사람이 없으면 무서울 때가 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인 데다가 그들 소유의 배도 많이 떠 있는 곳인데 혹시라도 배에 범죄자가 숨어있다가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겁이 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CCTV를 설치하자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침범"을 이유로 들며 격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매번 무산되고 말았다.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쪽에서도 산책을 많이 했다. 하루는 예쁜 정자 같은 게 보여서 잠시 앉아 폰으로 책을 읽기도 했다.
누군가 나무에 달아둔 새집이 사랑스러웠다. 너무 낮게 달아놔서인지 새들은 살지 않았다.
가끔 아침 일찍 홀푸즈 마켓 (Whole Foods Market)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했다. 아침 7시에 여는데 8시쯤에 가도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자리만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이곳엔 내 취향에 맞는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가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커피 한잔과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앉아서 할일을 했다.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카페인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일단 한번 마시면 그날은 평소의 몇 배로 에너지가 넘쳐났다. 평소에 보통 2가지 일을 할 수 있다면 여기 커피를 마시는 날에는 6가지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기 앉아 있던 시간들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엔 그랬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