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리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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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초.

 

회색이 된 뉴저지의 하늘.

 

눈 때문에 힘든 겨울을 보낸 뒤여서인지 이 정도 날씨만으로 감지덕지다. 난 이 동네를 사랑하지만 날씨만큼은 정말 사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사실 날씨는 한국이 더 나쁜 것 같다. 아니, 계절마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디가 더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뉴저지/뉴욕은 눈 때문에 고생이 많기 때문에 겨울만 따지자면 한국이 훨씬 낫다. 대신 한국은 여름이 너무 끔찍하다. 어떤 해(2019년이었나?)는 5월부터 10월까지 여름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너무 힘들었다.

 

여름이 한달 반인 곳에서 살다가 6개월을 덥게 보내는 건 쉽지 않았다. 늘 에어컨을 켜두었지만 미국처럼 소리 없이 집 곳곳에서 은은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군데에서 집중적으로 찬바람이 나오니 아주 고역이었다.

 

다행히 2020년 여름은 그렇지 않아서 아주 살만했다. 더 좋은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도 했고 실제 바깥 기온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대신 비가 계속해서 오는 바람에 우울한 기분이 될 때가 많았다.

 

뉴저지/뉴욕은 여름에 엄청 뜨거워질 때도 있지만 여름이 7월부터 시작되어서 8월 중순쯤 끝나 주니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에어컨을 포함한 집안 냉방 방식도 그렇지만 한국만큼 습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큰 것 같다.

 

그래도 뉴욕의 여름은 지하철이 정말 끔찍하다. 그 후끈함과 냄새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지하철 역이나 지하철 자체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더 좋다. 탈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한국에 와서는 거지도 못 본 것 같다. 뉴욕 맨해튼은 거지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지하철 계단, 역 안쪽, 골목길 등 군데군데 거지가 있다.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두리번거리면 저 앞에 거지가 한 명 누워 있다. 내가 가야하는 곳을 가려면 그 앞을 지나야만 한다.

 

그때부터는 숨을 참고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참지 못하고 거지가 있는 곳 바로 앞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만다. 그 순간 한 인간의 고된 인생이 냄새라는 형태로 농축되어 코를 찌르고 들어와서는 모든 후각신경을 깨운다. 마치 살아 숨쉬는 생물체 같은 그 냄새는 한참을 걸어간 뒤에도 내 코 안쪽 어딘가에서 내 비강을 문질러 대고 있다.

 

뉴욕에 나갈 때마다 그런 냄새를 각오해야 했다. 특히 여름은 냄새가 정말 끔찍했다. 때로는 그런 홈리스들이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냄새를 견딜 수가 없어서 다른 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전체적으로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가끔 길에다 침을 뱉는 사람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긴 해도 뉴욕에 비하면 아주 깨끗한 편이다. 뉴욕에서는 지겹도록 당해야 하는 캣콜링(catcalling)이 없는 것도 너무 좋고 편하다.

 

미국 친구 중 노스다코다주 시골에서 뉴욕으로 유학(?) 온 백인 애가 하나 있었다. 촌스러움이 가득하다 못해 줄줄 넘치는 친구였다. 뉴욕의 모든 것들을 신기해하면서 그것이 자기 나라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이 친구가 하루는 한국에도 높은 빌딩이 있냐고 물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인터넷에서 서울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한국에 데려와서 직접 보여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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