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리리씨

728x90

2017년 3월 중순.

 

눈이 너무 많이 온 데다가 날씨가 풀리지 않아서 좀처럼 눈이 녹질 않았다. 해가 많이 내려쬐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눈이 치워지지 않은 길은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한 채로 걸었다.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의 길은 누군가 치워둔 상태여서 걷기 운동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 당시엔 정말 죽어라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해서 탄탄한 몸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안 그래도 굵은 하체에만 자꾸 근육이 붙었다. 그나마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게 걷기 운동이어서 매일 걸었는데 그러다 보니 하체가 튼튼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 근육을 키우기 위해 아령도 종종 들었지만 워낙 가늘고 약한 팔이어서인지 좀처럼 근육이 붙지 않았다.

 

 


 

미국에서 살 때는 H-Mart가 거의 삶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찬, 한국 과자, 김치, 라면 등 모든 생명의 양식들을 여기서 살 수 있었다. 

 

원래는 한아름이란 이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에이치 마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난 이 새로 바뀐 이름이 너무 싫었다. 많고 많은 이름 중 H 마트가 뭔지... 입에 잘 붙지도 않을뿐더러 한아름이라는 정든 이름을 놓고 싶지 않았다.

 

 

위 사진은 포트리에 있는 H마트다. 리지필드에 있는 커다란 H마트보다 훨씬 작은 분점이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서 종종 이용했다. 특히 반찬, 떡 같은 걸 많이 샀다. 콩이 잔뜩 박혀 있는 떡, 호박죽, 팥죽 등등 할매 입맛 음식 위주였다.

 

사실 평소에 그리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줘도 안 먹는 것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에서는 그런 것들을 자주 먹게 되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절로 그렇게 구수한 입맛이 되는 걸까...

 


 

내 가족들은 꽃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원래 꽃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도 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꽃을 볼 때마다 내 굳은 인상이 풀어지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그냥 말로 다 할 수 없이 무작정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새 꽃은 내 인생 가장 큰 힐링 중 하나가 되었다.

 

 

꽃 옆에 있는 구형 폰은 번호도 없는 채로 그냥 저렇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가족이 모두 폰을 잘 바꾸다 보니 집에는 처리되지 않은 옛날 폰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나중에 폰 박물관을 차려도 될지도 모른다.

 


 

눈이 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흰색이 많이 보인다.

 

이 동네에서는 눈을 "하얀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하얀 쓰레기다. 치워도 치워도 하늘에서 계속 떨어진다.

 

 

가장 무서운 얼음길은 그새 더 꽁꽁 얼어서 더욱 얼음길이 되어 있었다. 매번 그렇듯 이날도 펭귄 걸음으로 겨우 통과해 지나갔다.

 

 

어찌 된 게 수년이 지나서 이렇게 사진으로 봐도 눈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H마트는 다시 가고 싶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도 별로였던 것 같다. 그 동네에 사는 동안엔 H마트가 캄캄한 공간 속의 한줄기 빛 같은 곳이었는데 한국에 살면서 너무 좋은 걸 많이 봐 버렸다. 지금 와서 그곳을 떠올리니 시시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H마트가 없는 미국 생활은 정말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처럼 끔찍하다. H마트가 없는 시골에서도 살아봤는데 솔직히 도저히 어떻게 합리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한국 식당과 마트가 없는 미국 시골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미국 음식을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난 무조건 한국 치킨, 짜장면, 떡볶이, 김치를 살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만 한다. 내 경우 그런 요소에 따라 행복의 레벨 차이가 너무나 크게 좌우된다.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한국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없는 곳에서는 절대로,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 

728x90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