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중순.
이 당시 자주 걷던 나무 중간 길의 끝. 이곳에는 미국과 한국의 국기가 나란히 꽂혀 있다. 그 사이에는 한국 지도 모양의 기념비가 놓여있다.
프리덤 파크(Freedom Park)라는 곳인데 한국 참전 용사(Korean War Veterans)들을 기리는 장소다.
위치는 뉴저지 포트리의 Central Blvd와 Abbott Blvd가 만나는 곳이다. (아래 지도 중간에 작은 회색 풍선 표시가 있는 곳) 딱히 큰 관심은 못 받는 곳이 아닌가 싶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산 나도 가까이 가서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한국 전쟁에 참가해 준 미군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애초에 힘 있는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잘 모르겠다.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을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면 안 됐긴 한데 전체적인 "미국"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 고맙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그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그 나비효과로 우리 엄마 아빠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느끼는 인생은 엿 그 자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 왔다. 돈이 적든 많든 모든 사람들은 힘든 인생을 살고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이란, 내가 겪고 있는 이런 걸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백년 가까이 하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난 그걸 아예 어릴 때부터 깨달았기에 아이만은 절대 낳지 않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지금도 내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이라 믿는다. (어떤 애였을지는 몰라도 나한테 평생 고마워해라!)
인생을 살다 보면 잠깐씩 행복한 순간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난 그런 거 다 필요 없으니 애초에 안 태어났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태어날래, 안 태어날래 선택하라고 하면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안 태어날래!"하고 외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태어나버렸다.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든 나쁘게 살든 인생은 계속해서 엿을 먹인다. 겨우 좀 숨돌릴 것 같으면 먹이고, 아직 입에 있는 데도 또 먹인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한다.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이 닥칠지에 대해 미리 각오하게 만든다.
나이가 드니 몸 여기저기가 맛이 가기 시작한다. 얼굴도 못생겨진다. 못나든 잘나든 나이 50이 되면 외모 평준화가 된다는데 정말인 것 같다. 난 아직 50까진 아닌데도 이미 평준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 느껴진다. 아주 엿 같은데, 그래도 그나마 외모의 부정적인 변화는 엿 중에서도 아주 작은 엿에 속한다. "와 이 정도 엿이라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정도다.
좀 더 큰 엿은 뼈와 관절이 맛 가는 과정이다. 장기도 예전 같지가 않다. 성한 곳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머리카락도 가늘어지면서 빠지기 시작하고 목소리도 엿 같이 변해간다. 늙은 인간의 냄새가 날 것만 같아서 자주 씻는 것도 필수가 되었다. 샤워, 청소, 설거지 등은 일단 태어나버린 이상엔 매일 해야만 하는 고문 같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60만 되어도 아주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고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만으로도 너무 감사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오늘도 소소한 행복을 챙겨볼까?" 이러면서 모든 걸 합리화시키며 살아가겠지. "실제 상황"은 눈에 안 보이게 이불로 다 덮어버리고 그대로 썩든 말든 그냥 두게 되겠지.
이런 나에게 "그런 생각으로 살면 행복하냐"고 누군가는 혀를 찰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사람은 한 명 한 명 다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난 행복하고 말고가 없다.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어렸을 땐 레고만 받아도 하늘 끝까지 기분이 치솟았다.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걸 계속해서 받는다면 처음 같은 그런 기분은 느낄 수 없게 된다. 난 40년을 넘게 살아서인지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마 정원이 있는 멋진 집이 생긴다 해도 그렇게까지 막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집을 잃게 된다 해도 그렇게까지 막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좀 더 살다 보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기도 할 테다. 사실 이미 몇 번 경험했다. 매번 느끼지만 아주 그냥 기가 막힌다. 그런 고통을 감당하고 살아가는 이 지구의 모든 인간들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진다.
한 번도 감당이 힘든데 계속해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조부모, 부모가 그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히는 일이다. 동물 가족도 포함이다. 인생이란 놈은 냉정하다. 애인, 형제, 친구, 자식도 제외를 시켜주지 않는다.
나이가 80이 훌쩍 넘은 우리 고모의 경우 지난 20-30년간 동생들, 오빠들, 그리고 언니를 잃었다. 소중한 친구도 여럿 잃었다. 이제 곧 남편을 잃게 될 것이다.
고모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다. "난 정말 행복해!" 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집이랑 차도 으리으리하고 자식들과 남편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하나 같이 완벽하다. "축복"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게 몰빵된 케이스다.
그럼에도 난 절대로 고모의 한 평생을 살아보고 싶지 않다. 아주 냉정하게 사양이다. 내가 보기엔 그런 인생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중한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고, 다 으스러진 허리뼈로 10년이 훨씬 넘도록 버티고 계시는데 그럼에도 행복하다는 건 지나친 자기 세뇌가 아닐까 싶다. 고모의 노년 이전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모습만 겉으로 보여서 그렇지 분명 죽을만큼 힘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인생이란 놈이 사람을 계속해서 행복하도록 그냥 둘리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고모처럼 행복한 척 연기를 하거나 자기 세뇌를 하면서 살고 있다. 나도 한동안 그런 자기 세뇌에 빠져 살았다. 너무나 불행한데도 행복하게 보이려 애썼다. 나 스스로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
자기 세뇌란 참 무서운 것이다. 본인은 그것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걸 깨고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꼭 깨고 나와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 고모처럼 평생 그 안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워낙 별일이 다 있다 보니 모든 것이 그냥 그러려니 하게 느껴진다. 정말 끔찍한 일이 터져도 "그래 원래 이런 게 인생이지"하게 된다. 아주 아주 가끔 좋은 일이 터지면 웬일인가 싶어서 신기해 하게 된다.
인생은 그냥 그런 것의 Up & down인 것 같다. 비율로 따지면 평범한 나날 44.5%, 평범과 끔찍의 중간 20%, 끔찍 10%, 아주 끔찍 5%, 극도로 끔찍 5%, 조금 행복 10%, 행복 5%, 아주 행복 0.5% 정도 되는 것 같다.
행복한 순간이 없어도 괜찮으니 대신 끔찍한 순간도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난 평범한 나날이 가장 감사하고 좋다. 성공, 부귀영화 이런 거 다 필요없으니 그냥 평범한 나날만 유지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딱 지금처럼. 이렇게만 유지가 되길. 헛된 희망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