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리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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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초. 뉴저지.

 

뉴저지 포트리나 리지필드 H마트에 가면 한국 약국이 있다. 미국은 병원 가기가 한국처럼 쉽고 편하지 않은 만큼 한국 약국은 미국 생활에서 큰 희망이 되어주는 곳이다.

 

나는 기관지를 비롯한 호흡기가 약하다. 기관지 천식이 발동해서 꽤 오랜 기간 동안 고생을 하기도 한다. 내 경우 조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가까이 있으면 며칠 안에 기침이 시작된다. 신기하게도 애들이 갖고 있던 바이러스가 내 몸에서는 기관지 천식을 일으킨다.

 

이 증세가 시작되면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을 하게 된다. 그냥 하루 종일 죽도록 기침을 한다. 새벽 6시를 지나고 아침 9시가 되어도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나중에 오후 3-4시쯤이 되면 거의 기절하듯 잠에 빠져드는 식이다.

 

앉아 있으면 기침이 덜 나오고, 누우면 미친 듯이 기침이 나와서 앉아서 잔 적도 많았다. 말이 잔 거지 아주 잠시 꾸벅거리다가 불편해서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이게 어떤 기침이냐면, 목 안쪽이 간질간질하면서 계속해서 나오는 마른 기침 같은 거다. 그러다 에어컨이나 히터에서 나오는 건조한 공기가 목구멍에 닿으면 거의 토하기 직전까지 사람 잡을 정도의 기침이 나온다. 발작과도 같은 이 순간에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눈물도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나와 가족은 그걸 "미친 기침"이라 부른다. 그냥 이대로 정식 병명으로 등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증세를 늘어놓는 것도 반복하다 보면 지친다. 굳이 설명할 필요없이 "미친 기침에 걸렸어요"라고 하면 의사나 약사가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 기침에는 도무지 듣는 약이 없다. 그나마 좀 듣는 건 네이쳐스 웨이의 에키나시아(Nature's Way의 Echinacea) 정도였다. 

 

 

에키나시아는 면역력을 즉각적으로 향상시켜 주어서 감기 초기나 염증에 좋다. 항상 집에 두는 보조제 중 하나인데 지금껏 20여 년간 이걸로 셀 수 없이 감기와 염증 위기를 넘겼다. 몸이 조금이라도 아플 것 같으면(감기에 걸릴 듯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다거나 할 때) 얼른 한 알 먹고 푹 자주면 몸이 개운해진다.

 

주로 감기 초반에 많이 쓰긴 하지만 초반이 지나서 하이라이트일 때 먹어줘도 도움이 된다. 다만 항생제와는 같이 복용해서는 안 되고, 2주 이상 먹는 건 좋지 않다.

 

내 천식의 경우에는 이걸 먹으면 기침이 한 30% 정도 진정되는 효과를 보였다. 그 정도 효과를 보이는 약도 잘 없어서 에키나시아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화학 성분이 아닌 한약 같은 생약 성분이니 부작용도 일반 약에 비해서는 덜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난 부작용을 겪은 적이 없다.)

 

그 외에도 기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저런 약을 참 많이도 사보았다. 한국 약국에서는 맥담이나 뮤시넥스 Mucinex 같은 약을 주었는데 내 증세에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기침이 날 것 같으면 얼른 리콜라 Ricola 같은 Cough drops 같은 목캔디를 먹어보기도 했는데 이건 아주 조금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내가 기관지 천식이라는 사실은 한국에 와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천식이라고 해서 기침을 항상 하는 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감기에 걸리는 횟수 정도로만 발병이 되었고 빠르면 한 달, 오래 가면 두 달 반 정도만에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그 오랜 기간 잠도 못 자고 기침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앓는 동안엔 증세가 완전히 천식 같았다. 발작 같은 기침이었고 기침을 하는 기간도 길어서 단순한 감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국 의사(정확히는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인 의사. 최근 의학 정보 공부하지 않고 수십년 전 옛날 지식 그대로 진료하는 나이 많은 의사)는 내가 이건 아무래도 천식 같다고 하자 절대 천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감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0.1%도 증세 호전이 안 되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그냥 지내다가 한국에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바로 서울에 있는 내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았다.

 

증세는 없었지만 미리 약을 타두고 싶었던 것이다. 기침이 시작되고 나면 병원에 갈 때까지 괴로울 텐데 그 시간이 진작부터 두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도 발병이 된다면 수면제 주사를 맞고 입원해서 계속 잠만 잘 생각이었다. 그만큼 깨어있기가 두려울 만큼 끔찍한 기침이기 때문이다.

 

한국 의사 선생님은 내 증세에 대해 듣자마자 기관지 천식 같다고 하셨다. 그말을 듣는 순간 "봐 맞잖아, 천식!"하는 생각에 속으로 울컥하게 되었다.

 

혹시 아닐 수도 있으니 폐 엑스레이나 심전도 등 다른 검사도 해보았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기관지 천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병이 발병하지 않은 상태여서 약은 얼마 받지 못했다.

 

그 이후 기다렸다. 기침이 시작되는 순간 바로 약을 먹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발병하지 않았다. 1년에 두 번은 반드시 걸리던 것이고 5-6년간 지속되었던 건데 한국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전혀 발병하지 않았다. 

 

언제 기침이 시작될 지 몰라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1년이 무사히 지나고 나니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왜 안 걸리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이후 2년이 더 지났다.

 

한 번도 발병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긴장이 풀린 것은 물론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가 그런 병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도 않은 채로 살고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대체 내 병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가져오던 조카들? (우연인지 몰라도 조카들이 코 훌쩍거리고 열이 나는 감기에 걸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열/콧물/가래 없고 마른 기침만 나는 기관지 천식이 발병되었다.)

 

미국 환경? (한국에 오고는 3년간 "미친 기침"을 한 번도 안 했으니까. 그런데 동시에 조카들이 곁에 없기도 했다.)

 

내 세포들에게 대체 무슨 일인 건지 물어볼 수 없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미친 기침을 안 하고 살아서 너무 좋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고 있는 게 문득 신기하게 느껴진다.

 

가끔 실내가 아주 건조해진 상태에서 에어컨이나 히터 바람이 목구멍에 닿으면 미친 기침의 느낌이 살짝 오긴 한다. 그래도 기침은 거의 나오지 않고 눈물만 조금 찔끔거리다가 1분 안에 증세가 사라진다.

 

이 글을 적다 보니 또 걸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걸릴 때마다 "이런 거 한 번만 더 걸리면 분명히 더는 못 버티고 죽게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몸 약한 할머니가 된 이후 걸린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될 것 같다.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 전혀 전염은 되지 않던데 그나마 참 다행인 부분이다. 어쨌든 간에 내 기관지 천식이 다시 발병하기 전에 의학이 더 발달되었으면 좋겠다. 많이 바라지도 않고 그저 밤에 잠을 잘 수만 있을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보니까 기침 나올 때 팔에 붙이는 패치도 있던데 그건 어느 정도의 효과려나. 그런 것이 미국에 있는 한국 약국에도 있었다면 기침 나올 때 시험해봤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시험해 보기 위해 다시 아프고 싶진 않다. 사람 몸이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몰라도 천식 같은 건 코로나와 함께 지구 상에서 깨끗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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